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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아름다운세상

"하 수상한 시절에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대학가 술렁

철도민영화, 불법 대선개입, 밀양 주민 자살 등 세상 일에 무관심하게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안녕하십니까?’라고 묻는 한 대학생의 글이 대학 사회에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고려대 경영학과 주현우씨(27)는 10일 오전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를 손으로 써 교내에 붙였다. 9일 밤 철도 민영화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4213명이 직위해제되고, 밀양 주민이 음독자살을 하는 “하수상한 시절에 어찌 모두들 안녕하신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주씨는 이어 “수차례 불거진 부정선거의혹,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이란 초유의 사태에도, 대통령의 탄핵소추권을 가진 국회의 국회의원이 ‘사퇴하라’고 말 한 마디 한 죄로 제명이 운운되는 지금이 과연 21세기가 맞는지 의문이다”고 적었다. 

경향신문

고려대 주현우씨(27)는 10일 오전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를 손으로 써 교내에 붙였다. “9일 밤 철도 민영화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4213명이 직위해제 되고, 국가기관 선거개입, 밀양 주민 음독자살 등 하수상한 시절에 어찌 모두들 안녕하신지 모르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주씨는 “88만원 세대라는 우리는 IMF 이후 영문도 모른 채 맞벌이로 빈 집을 지키고, 매 수능을 전후하여 자살하는 적잖은 학생들에 대해 침묵하길, 무관심하길 강요받았다”고 썼다. 그는 “저는 다만 묻고 싶다. 안녕하시냐, 별 탈 없이 살고 계시냐고.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 없으신가”라고 밝혔다. 

이 대자보를 찍은 사진은 페이스북에서 1000회 이상 공유됐다. 대자보가 게시된 교내 게시판 옆에는 주씨에 응답하는 다른 학우들이 손글씨로 쓴 ‘안녕하지 못합니다. 불안합니다!’, ‘진심 안녕할 수가 없다!’ 등의 자보와 응원 게시물 수 건이 연달아 붙었다. 

‘09학번 강훈구’라고 밝힌 학우는 ‘즐거운 일기’라는 글에서 “나는 이 글을 보고서야 내가 안녕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다”며 “입학하던 해 용산에서 6명이 불에 타 죽었지만 교수, 선배, 친구 아무도 그 얘기를 하지 않았다. 다 이렇게 사는가보다 생각했다. ‘다 그렇게 사는 거야’ 말하는 사람은 있어도 ‘너는 안녕하냐’ 묻는 이는 없었다”고 밝혔다. 

고려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대자보 게시물에 댓글이 수십건 달렸다. 한 학우는 “안녕 못합니다. 그렇다고 나갈 용기도 없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함부러 나섰다가 기득권 눈밖에라도 나면 취직도 못하고 목숨줄이 그들에게 있으니 어찌 대항하겠습니까. 용기없는 자라 죄송합니다 그리고 응원합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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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씨의 대자보 곁으로 다른 학우들도 손글씨로 쓴 대자보를 연달아 붙였다.


12일 오전, 오후 내내 주씨는 대자보가 게시된 고대 정경대 후문을 지키고 서 있었다. ‘안녕하지 못한 이들’과 함께 부당함을 외치며 14일 오후 3시 학교에서부터 서울역까지 걸어가는 행동에 동참하기를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주씨는 오전 동안 혼자였지만, 학생들이 하나둘씩 멈춰 섰고 이날 10여명이 주씨 곁을 지켰다. 

지나던 학우들은 주씨 등에게 각종 음료와 간식거리를 전하면서 “대자보를 읽고 희망을 봤다. 안녕할 수 없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니”, “기말고사 때문에 너무 바빠서 함께할 순 없지만 응원하고 지켜보겠다”라고 말했다. 눈이 내리자 핫팩이나 쓰던 우산을 건네기도 했다. 

주씨는 “온라인과 달리 현실 캠퍼스에서는 개인이 사회 문제에 대해 목소리 내는 게 터부시되는 분위기가 조성돼 왔다. 내 스스로 이름을 걸고 말해야겠다는 의미로 자보를 썼다”며 “일반적인 학생운동단체들이 쓰는 글과 표현방식이 좀 다르고 날 것 같아서 좋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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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에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벽보를 쓴 주현우씨(27)와 학우들이 ‘안녕하지 못한 이들’의 동참을 격려하기 위해 12일 진행한 선전전을 본 학우들은 70여개에 달하는 음료와 간식, 핫팩을 전했다.


아래는 주씨가 쓴 자보 전문. 

<안녕들 하십니까?> 

1. 어제 불과 하루만의 파업으로 수천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다른 요구도 아닌 철도 민영화에 반대한 이유만으로 4,213명이 직위해제된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 사회적 합의 없이는 추진하지 않겠다던 그 민영화에 반대했다는 구실로 징계라니. 과거 전태일 청년이 스스로 몸에 불을 놓아 치켜들었던 ‘노동법’에도 “파업권”이 없어질지 모르겠습니다. 

정부와 자본에 저항한 파업은 모두 불법이라 규정되니까요. 수차례 불거진 부정선거의혹,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이란 초유의 사태에도, 대통령의 탄핵소추권을 가진 국회의 국회의원이 ‘사퇴하라’고 말 한 마디 한 죄로 제명이 운운되는 지금이 과연 21세기가 맞는지 의문입니다. 

시골 마을에는 고압 송전탑이 들어서 주민이 음독자살을 하고, 자본과 경영진의 ‘먹튀’에 저항한 죄로 해고노동자에게 수십억의 벌금과 징역이 떨어지고, 안정된 일자리를 달라하니 불확실하기 짝이 없는 비정규직을 내놓은 하수상한 시절에 어찌 모두들 안녕하신지 모르겠습니다! 

2. 88만원 세대라 일컬어지는 우리들을 두고 세상은 가난도 모르고 자란 풍족한 세대, 정치도 경제도 세상물정도 모르는 세대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1997~98년도 IMF 이후 영문도 모른 채 맞벌이로 빈 집을 지키고, 매 수능을 전후하여 자살하는 적잖은 학생들에 대해 침묵하길, 무관심하길 강요받은 것이 우리 세대 아니었나요? 우리는 정치와 경제에 무관심한 것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단 한 번이라도 그것들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목소리내길 종용받지도 허락받지도 않았기에, 그렇게 살아도 별 탈 없으리라 믿어온 것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수조차 없게 됐습니다. 앞서 말한 그 세상이 내가 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만 묻고 싶습니다. 안녕하시냐고요. 별 탈 없이 살고 계시냐고요.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없으신가, 혹시 ‘정치적 무관심’이란 자기합리화 뒤로 물러나 계신 건 아닌지 여쭐 뿐입니다. 만일 안녕하지 못하다면 소리쳐 외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것이 무슨 내용이든지 말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묻고 싶습니다.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